
제지 원료탱크 내부 세척작업 중 유해물질로 인한 질식사고
- 담고 있는 내용 -
● 제조업 중대재해사례
'아는 것이 힘'이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위험을 재빠르게 인지하고 대응해야 하는 밀폐공간 작업현장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2인 1조, 제지 원료탱크 세척작업
산업용 종이를 생산하는 A사. 네팔 청년 타파는 일주일 전 이곳에 취직했지만, 일을 배우는 속도가 제법 빨랐습니다. 조를 이룬 생산직 송 모 씨는 타국에서 고생하는 청년의 모습이 안쓰러워 뭐라도 챙겨주려 애썼습니다. 사고 당일, 두 사람은 제지 원료탱크를 세척하기 위해 탱크 입구로 향했습니다.
원료탱크에서는 백색지와 황색지를 교대로 생산하는데, 그때마다 내부의 슬러리*를 씻어내야 했습니다. 특히 이날 세척할 곳은 슬러리가 최종으로 모이는 6번 탱크였습니다. 나머지 탱크와 달리, 6번 탱크는 하루 이틀이 지나서야 세척을 했습니다. 다음 생산의 일손이 부족해 청소할 여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 슬러리(Slurry): 물에 파지, 습강제, 형광제, 기름제거제 등을 배합한 종이원료
매캐한 냄새가 차오르는 6번 탱크 내부
2층에 도착한 송 모 씨는 물 호스를 찾았습니다. 그리곤 타파의 손에 쥐어주며 송 모 씨가 과장된 몸짓으로 물 뿌리는 흉내를 내자 타파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깨끗하게 해야 돼, 깨끗하게!" 한국말이 서툰 타파를 위해 같은 말을 두 번씩 반복하는 일도 잊지 않았습니다.
작업방법을 일러준 송 모 씨는 1층으로 이동했습니다. 탱크 배출 밸브에 거름망을 설치해놓고,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슬러리를 수집하기 위해서입니다. 송 모 씨는 이날따라 걱정이 더했습니다. 세척이 예정보다 늦어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정이 바빴던 탓에 이미 나흘이나 탱크를 방치해둔 상황이었습니다.
한편, 타파는 탱크 입구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캐한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타파는 본능적으로 코를 막았지만 '냄새가 나면 위험하다'라고 알려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신 뒤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황화수소 중독, 잇따르는 재해자
1층에서 슬러리 수집을 마친 송 모 씨는 2층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웬일인지 타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순간, 뭔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송 모 씨는 황급히 탱크 입구로 뛰어갔습니다. 입구 쪽에서 내부를 들여다본 그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타파가 탱크 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송 모 씨는 크게 소리를 질러 위급한 상황을 알렸고, 마침 그 근처를 지나가고 있던 직원 강 모 씨가 달려왔습니다. 그는 탱크 내부로 내려갔지만, 역시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당황한 송 모 씨 역시 두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 황급히 탱크 아래로 내려갔고, 이내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문제는 '매캐한 냄새'였습니다. 냄새의 정체는 다름 아닌 황화수소. 나흘간 슬러리가 과다 발효됐고, 물 호스를 이용해 내부를 휘젓자 100ppm 이상의 고농도 황화수소가 발생하며 작업자들을 질식시킨 것입니다. 이 사고로 타파와 송 모 씨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강 모 씨는 의식불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사고, 막을 수는 없었을까?
밀폐공간 안전교육이 이뤄졌더라면…
네팔 청년 타파는 매캐한 냄새를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 없이 작업을 지속했습니다. 그를 구조하기 위해 뛰어든 작업자들은 송기마스크조차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밀폐공간 작업 시 질식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1) 산소 농도 측정, 응급조치 등 안전보건 교육 및 훈련, 송기마스크의 착용과 관리 등이 포함된 밀폐공간 보건작업 프로그램을 수립, 이행해야 하고, 2) 밀폐공간 작업자에게 16시간 이상의 특별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3) 이에 따라 작업자가 밀폐공간에 진입하기 전 유해가스 농도 측정 및 환기 실시, 구출용 송기마스크 비치 등 적절한 안전조치가 이뤄져야 합니다.
[출처] 밀폐된 원료탱크, 죽음의 공간이 되다|작성자 안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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